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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Original Voice

스티비원더 그는 누구인가?




흑인 대중음악의 살아있는 역사

 

1950년, 미조리 주(州)의 Saginaw에서 태어난 Steveland Morris라는 본명으로 태어난 Stevie Wonder는 1954년 가족과 함께 디트로이트 시(市)로 이주한다. 그곳의 교회 성가대에서 처음 음악활동을 접하게 되는데, 이때 스티비 원더는 드럼부터 피아노, 하모니카 등의 악기를 마스터하며 천재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1961년에 미라클스(The Miracles)의 멤버, 로니 화이트(Ronnie White)에게 발탁된 스티비 원더는 베니 골디(Berry Gordy)에게 오디션을 받고 곧바로 계약하는 행운을 얻게 된다. 62년에 베니 골디의 Motown에서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데뷔를 하게 되고, 63년의 [[The 12 Year Old Genius]]라는 라이브 앨범이 빌보드의 팝 앨범 차트 1위를 하면서 팝음악의 스타로서 자리를 잡게 된다.

60년대에만 4곡의 No.1 싱글과 한 장의 No.1 앨범을 포함한 수많은 히트곡을 낸 스티비 원더는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한 시도를 한다. 이전에도 공동 작곡자로서 자신의 음악적 영역을 지키고자 했던 그는, 프로듀서의 판단 하에 작곡가와 세션맨이 앨범의 음악적 요소의 대부분을 담당했던 60년대의 계약관계를 끝내고, 셀프 프로듀싱을 하면서 가능한 많은 작곡과 연주를 스스로 해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의 앨범들이 음악적 완성도 역시 뛰어나지만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아티스트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의 셀프 프로듀싱 3번째 작품인 [[Talking Book]]은 73년 빌보드의 블랙 앨범 차트 1위, 팝 앨범 차트 3위에 오르면서 그가 ‘스타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스타가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이후 일일이 거론하기가 까다로울 만큼의 많은 앨범과 히트곡을 만든 스티비 원더는 1980년, 최고의 발라드 [Lately]가 담긴 [[Hotter Than July]]가 빌보드 앨범 차트 No.1을 기록하며 절정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70년대의 행보를 마감하게 된다.

70년대가 그의 전성기라고 해서 80년대 이후 스티비 원더가 전설뿐인, 이제는 베스트 앨범이나 각종 컨필리션 앨범 따위를 양산하는 퇴물급 아티스트가 된 것은 아니다. 물론 이전보다는 적은 량의 작품을 발표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단 발매되는 앨범과 곡은 팝음악계에서의 영향력이란 측면에서나, 판매고를 고려해서나 여전히 최고의 아티스트임을 증명하고 있다. The Beatles의 폴 메카트니(Paul McCartney)와의 공동작업인 [Ebony And Ivory]나 아카데미 영화상 주제가상을 받은 [I Just Call To Say I Love You], 그리고 빌보드에서 5개 차트의 No.1을 기록한 [Part-time Lover] 등은 80년대 이후의 스티비 원더의 꾸준한 창작력의 증거가 될 것이다.

앞서 말한 스티비 원더의 작품들이 갖는 의미는 비단 대중적인 인기의 척도인 높은 판매고만은 아니다. 지극히 전통적인 악기의 연주에서 최첨단의 신디사이저에 의한 연주까지 음악적 부분뿐만 아니라, 사운드에 대한 탐구도 예술가의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가장 대중적인 신디사이저 악기 중 하나인 커즈와일(kurzweil)은 미국의 커즈와일 박사가 맹인인 스티비 원더가 사용하기 편하게 제작한 악기이다. 신디사이저를 이용한 음악의 혁신에 최전방에 있었던 스티비 원더에 대한 헌정의 성격이 강한 악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세기를 넘어선 현재에도 각종 공연과 시상식에 모습을 보이며, 멈추지 않는 활동과 식지 않은 인기를 보여주는 스티비 원더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흑인음악을 하는 많은 아티스트들의 전범이 되고 있다. 자신의 모든 작품을 통해 지속적으로 진정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스티비 원더는 흑인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으며, 진정한 아티스트란 어떤 사람인가를 자신의 삶을 통해 증거하고 있다.

 

시작은 알지만 그 끝을 정말 어디까지 인지 알주 없는 진정한 아티스트